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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기획] 게임업계 숨은 동반자 ‘사모님’ 열전

무적태풍용사 2006. 10. 30. 23:02
글 : 게임메카 김명희 기자 [06.10.30 / 13:20]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개그 프로그램의 한 코너가 있다. ‘김기사 운전해, 어서~’라는 단 한마디로 대한민국을 웃음바다로 만든 개그코너의 핵심은 사모님의 우아한 외면과 충돌하는 엽기적인 대사와 행동이다.

게임업계에도 사모님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웃음을 주는 사모님이 아닌, 개발자의 애환을 함께 하는 친구로서 경영자의 고뇌를 함께 나누는 동료로서 존재하는 ‘사모님’이 있다.

◆ 개발자의 아내는 아이디어 주는 ‘뮤즈’

▲ 그루브파티의 시작은 아내의 게임생활 덕분

최근 김학규 대표, 서관희 이사 등 유명 개발자들의 결혼 소식이 들려오는 등 게임업계에도 ‘쌍춘년’ 바람이 불고 있다. 잦은 야근으로 배필을 찾지 못하는 ‘노총각’이나 다소 늦은 결혼식이 일반화된 게임업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천생연분’을 찾은 개발자들은 아내가 게임 개발의 영감을 주는 사례도 많다고 말한다.

세계 최초 온라인 비보이댄스게임 ‘그루브파티’를 개발한 지엔이 엔터테인먼트 김호진 대표는 리듬액션게임 개발에 착수한 계기가 부인 때문이라고 입을 열었다.

김 대표는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들어서면서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버스트어무브’를 즐기고 있는 부인을 통해 댄스게임을 개발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평소 게임을 즐기는 부인 덕분에 게임 개발에 대한 많은 조언을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청강문화산업대 컴퓨터게임과 김광삼 교수의 이야기는 더욱 애틋하다. ‘그녀의 기사단’을 제작하고 ‘별바람’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김 교수는 ‘정말 행복한 일을 하라’는 부인의 따뜻한 격려에 자극받아 본격적으로 게임개발에 뛰어들었다. 그 이전까지 그는 의대를 나온 촉망 받는 의사 지망생이었다.

◆ 사모님 아닌 사장님, 내조보다 강력한 ‘외조’

여성 스스로 게임 개발자나 경영인의 사모님이 아닌 게임업체의 창업주로 나선 사례도 많다. 이 경우, 특이한 점은 남편이 아내를 위해 적극적인 ‘외조’에 나선다는 것.

‘사장님’의 남편이 아닌 부사장의 위치로 아내를 보필하는 남편들의 대표적인 경우는 제이씨 엔터테인먼트 백일승 부사장과 컴투스 이영일 중국 법인장이다.

▲ `외조의 힘은 강하다` 전업주부에서 당당한 여성 CEO로 자리를 굳힌 김양신 사장

백일승 부사장은 프로그래머 출신인 김양신 사장의 창업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며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백 부사장은 유치원에 다니는 딸이 ‘설거지는 누가 하나요?’ 라는 질문에 ‘아버지’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이후 부인의 강력한 설득으로 제이씨에 합류, 마케팅 및 재무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

컴투스의 중국 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이영일 이사의 경우도 비슷하다. 박지영 사장과 같은 과 동기로 시작한 인연은 창업과 결혼으로까지 이어진다. 일찍이 96년 학생벤처로 자취방에서 사업을 시작한 박지영 사장을 후원하며 이영일 부사장은 컴투스를 국내 최고 모바일게임 업체로 올려놓는다.

현재 이영일 이사는 중국에서 머무르며 컴투스의 퍼블리싱 사업 및 해외 진출 사업을 진두 지휘하고 있다. 그들은 직접 경영에 나서는 것보다 회사를 위한 전략을 짜며 아내들을 보필하는 일이 더 적성에 맞는다며 입을 모았다.

◆ 시련을 함께 이겨낸 진정한 동반자

▲ 이제는 서로가 그림자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방갑용 사장

개발자의 아내는 때로는 유능한 사원이 되어 남편을 돕는다. 특히, 벤처 기업이 대다수인 게임업체의 경우 어려웠던 창업 당시에 가장 많은 도움을 준 대상으로 ‘아내’를 꼽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경우가 캐주얼 슈팅게임 ‘큐이’를 만든 열림커뮤니케이션의 김소연 이사와 넥슨의 유정현 이사다.

열림의 방갑용 사장은 97년 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를 설립한 이후 IMF와 잇따른 게임 개발 실패로 회사의 운영은 날로 어려워져만 갔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하나 둘씩 떠나가고, 급기야 주말에는 부부가 게임 운영을 위해 교대로 서버를 지키는 경우도 많았다. 여행은커녕 명절에도 회사를 지켜야 했기 때문에 제사도 지내지 못했다.

아내인 김소연 이사는 당시를 회상하며 “나는 편하게 ‘사모님’ 소리 듣는 사람이 아니라 열림 직원의 한 사람일 뿐”이라며 “10년 동안 남편이 할 수 없는 일들을 보조하며 직원들과 조화를 일궈낸 것이 내 할 일이었다”고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지난해 한국의 여성 부호 7위에 이름을 올리며 유명해진 유정현 이사는 넥슨 김정주 대표의 아내로서 창업 당시부터 회사의 안살림을 책임진 ‘숨은 조력자’에 해당한다.

넥슨 관계자는 “김정주 대표가 처음 창업주로서 회사를 세웠을 때는 인원이 채 10명도 되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일손이 필요했다”며 “유정현 이사는 회사의 전반적인 살림살이를 도와주는 것이 계기가 되어 후에 넥슨의 운영을 전담하는 ‘와이즈키즈’의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와이즈키즈는 넥슨SD로 사명을 변경하고, 유정현 이사는 대표직을 정일영 이사에게 넘겨준 후 조용한 내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 게임개발자 잦은 야근 이해해주는 아내 ‘고마워’

국내 게입업계 개발자들도 잦은 야근으로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아내에게 종종 고마움을 표시한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며 꼼꼼하게 모니터링을 해주면 큰 힘을 얻는다고 입을 모았다.

‘둠’과 ‘퀘이크 시리즈’를 만들어낸 유명 개발자 존 카멕은 id소프트웨어가 주최하는 퀘이콘(Quakecon) 행사장에서 만난 한국계 교포인 캐서린 안나 강과 결혼했다. 안나 강은 id소프트웨어의 영업 담당 이사를 맡아 일하며 그를 도운 바 있다.

존 카멕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부인’이라고 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한다며 부인과 함께 자신이 만든 둠이나 퀘이크를 플레이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낼 때 가장 행복하다고 고백한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게임개발은 ‘게임’ 한가지에 미쳐야만 할 수 있는 일”이라며 “경쟁이 치열한 게임업계에서 개발자나 경영자의 아내들은 더욱 말 못할 고생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 신혼여행에도 컴퓨터를 들고 가 작업했다는 존 카멕

희화화된 개그 캐릭터로서 운전기사를 부리는 ‘사모님’이 아닌 개발자들의 그림자 같은 존재로 남편들을 돕는 아내들. 그들이 게임업계의 진정한 동반자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