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공간

넥스트로 박진식 변호사 “엔씨, 실수에 책임지지 않는 기업”

무적태풍용사 2006. 10. 23. 22:43
글 : 게임메카 김시소 기자 [06.10.23 / 10:42]

지난 4월 <리니지> 이용자 5명이 엔씨소프트에게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승소했다. 이 소송은 엔씨소프트가 대 유저 소송에서 처음으로 패한 사례로 기록되었다. 당시 ‘리니지 명의 도용사태’로 유례없이 집중적으로 엔씨소프트를 조명하고 있던 언론들은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소송의 결과를 주목했다.                 

소송 당사자들조차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소송이 진행되자 ‘바위’는 바위가 아니었고 ‘계란’은 계란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용자 5명을 대리해 1차 소송을 진행했던 넥스트로의 박진식 변호사는 현재 44명의 소송인을 추가로 모집해 두번째 소송을 준비 중이다.

엔씨, 실수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기업

게임메카(이하 G): 1차 소송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집중적으로 문제를 삼은 부분은 어디였나?      

박진식 변호사(이하 박):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부분이다. 엔씨소프트는 2004년 5월 <리니지2>를 업데이트하면서 사용자의 게임정보를 담은 파일인 로그파일을 암호화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5월 11일부터 16일까지 게임에 접속한 이용자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무방비로 노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개인PC가 아닌 PC방 등을 이용해 게임을 즐긴 경우는 대중에게 자신의 <리니지2>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그대로 노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명백한 엔씨소프트의 과실이었다.

G: 엔씨소프트가 패소 이후 이 사실이 이슈화되는 것을 막았다고 주장했는데?     

박: 패소 직후 엔씨소프트는 사용자들의 로그기록 공개를 아예 거부했다. 이것이 어떤 의미냐 하면 사용자들이 승소 소식을 듣고 2차 소송에 참여하는 것을 막았다는 뜻이다.

지금 2004년 5월 게임 접속여부에 대해 정확히 기억하는 유저가 몇이나 되겠는가?

엔씨소프트는 우리가 정보통신부에 이의를 제기하고, 정보통신부가 사용자들의 로그기록을 공개하라는 공문을 엔씨소프트에 전달하자 그제서야 회사방문, 주민등록등본 제출을 한 유저에 한해서 기록을 공개하는 등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이러한 조치는 정보통신부의 가이드 라인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다.

정보통신부에서 지속적으로 로그 기록을 공개할 것을 주문해 지금은 별다른 절차 없이 접속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다.     

▲ 박진식 변호사

G: 엔씨가 기업으로서 과실에 대해 굉장히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박: 상반되는 예가 있다. 현재 맡고 있는 소송 중에 ‘국민은행 개인정보 유출’ 소송이 있다. 국민은행 인터넷 뱅킹 이용자들의 개인정보가 이메일로 뿌려진 사건이다. 국민은행은 사건이 터진 직후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재발방지에 대한 노력을 약속하는 등 책임을 지겠다는 액션을 취했다. 또 지금까지도 피해사실을 사측에서 직접 나서서 파악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엔씨소프트는 공개 사과는커녕 ‘유출이 아니다’, ‘사건이 제대로 마무리 됐다’. ‘대표가 한국에 없어 답변을 주기 힘들다’라고 말하는 등 문제를 덮으려고만 하고 책임을 회피하려고 했다. 책임 있는 사람의 합리적인 답변하나 발표되지 않았다.    

물론 두 개의 사안이 서로 다르지만 기업이 사회적인 책임을 요구 받는다는 점에서 국민은행과 엔씨소프트의 태도는 너무나 다르다. 1차 소송 직후 유저들이 엔씨에 로그 기록 공개를 요구하자 “회사 방침상 기록 공개는 불가능합니다. ^^;” 이렇게 메일 답변을 보내더라.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엔씨소프트 정도면 대기업인데 이러한 무책임한 태도는 너무하지 않나? 인식 자체가 덩치에 비해 너무 후진적이다.

▲ (그림1) `말로만 죄송?`

엔씨소프트는 4월 패소 직후 로그기록 공개요구를 거부했다

G: 게임업체의 불공정한 약관, 빈약한 소비자 보호 체계에 대한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박: 게임업체의 약관을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다. 유저가 잘못 한 부분에 대해서는 계정 압류 등 실질적인 조치가 구체적으로 명기되어 있는 반면, 업체의 과실에 대한 책임의무, 손해배상 의무는 전무하다.

약관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업체에 유리하게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온라인 게임은 수십, 수백 시간을 공들여야 하는 특이성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일방적인 약관은 유저들 입장에서는 너무나 불합리 하다고 볼 수 있다.                             

개인정보의 중요성, 게이머들도 둔감한 것은 마찬가지

G: 엔씨소프트가 이슈화를 차단했다고 해도 소송에 참여한 이들이 적다  

박: 소송을 진행해보니 게이머들도 개인정보의 중요성에 대해 둔감한 것은 마찬가지더라. 첫 번째 소송 때에는 자신이 피해자임을 알고서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 이었다. 2차 소송인들을 모집할 때도 엔씨소프트에서 로그기록의 공개를 거부하자 불 같이 일던 소송 열기가 싹 사그라져 버렸다.

G: 아이디와 비밀번호만으로 개인정보 유출이라 볼 수 있나? 또 개인정보의 범위는 어디까지로 봐야 하나?

박: 이번 소송에서 법원은 5명의 원고들에게 50만원씩 피해보상을 하라고 엔씨소프트에 주문했다. (원고들이 주장한 피해보상액은 한 사람당 1000만원이었다) 이 비용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보통의 사람들은 인터넷 여러 사이트에 같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쓴다. <리니지2>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네이버나 싸이월드에서도 똑같이 사용될 수 있다는 말이다. 때문에 일단 어떤 경로든지 아이디나 비밀번호가 유출되면 이 사용자는 자신이 이용하는 전 사이트의 아이디와 비밀변호를 변경해야 한다. 손해배상 금액은 이런 수고로움에 대한 배상의 의미가 있다.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지 개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자료는 ‘개인정보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말이다. 아직까지 법적으로 개인정보에 대한 정의가 내려진 적은 없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다른 어떤 정보와 합쳐져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데이터까지 개인정보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이용자들의 직접적인 움직임이 엔씨를 바꿀 수 있다

G: 이런 중요한 피해를 입고서도 소송에 참여도가 크지 않다는 것은 유저들이 권리의식이 희박해서인가?

박: 유저들이 피해사실에 대해 그냥 넘어갔기 때문에 업체들도 거기에 길들여졌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상에서 욕하고 악플만 단다고 해서 엔씨가 바뀔 것 같은가?

엔씨소프트와의 소송에서 승소 이후 믿을만한 분으로부터 아주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들었다. 판결 직후 우리나라의 한 메이저 온라인 쇼핑몰에서 고객의 개인정보를 팀장 이상 급만 열람하도록 바꿨다고 한다. 그 전까지는 그 업체의 말단 직원들까지도 고객들이 어떤 물건을 사고 파는지 다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마음만 먹으면 친구가 무슨 물건을 구매했는지, 전 애인이 어떤 쇼핑몰을 다녔는지 다 알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엔씨가 소송에 패한 직후 이 온라인 쇼핑몰은 내부적으로 방침을 바꿔 팀장 이상만 정보를 열람할 수 있도록 변경했다. 이유는 이런 무분별한 개인정보의 공개가 법적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소송의 영향이 이런 것이다. 누구든지 사회적, 법적으로 압박을 받으면 변화할 수 밖에 없다. 엔씨가 바뀌면 우리나라 모든 게임업체들이 따라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G: 결국 유저들의 실질적인 움직임이 보다 나은 게임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박: 법적 논쟁을 거치지 않고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는가? 업체 측에 게임 서비스에 대한 마인드를 확고히 심어주려면 이런 소송에 해당 게이머들이 적극 참여함으로서 효과를 볼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손해배상에서 엔씨는 ‘실질적으로 피해본 것이 없지 않느냐?’라고 주장했고, 원고들은 ‘게임 아이디 유출 때문에 전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개인정보를 수정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1심에서는 원고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졌다.

손해배상 금액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번 판례 때문에 엔씨는 더욱 철저히 개인정보 보안에 힘쓸 것이고, 유저들은 좀더 안전한 환경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또 대(對) 유저 정책도 가다듬어 질 것이다.

이런 식으로 차차 서비스 마인드를 주입하고 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 (그림2) `실질적인 조치와 사과`

국민은행은 사고직후 현재까지 피해사실을 확인하고 조치를 취하고 있다

아이템 소유권, 게이머들에게도 있다고 본다

G: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사실 유저들은 자신의 개인정보 유출보다 그로인해 발생하는 아이템 분실, 계정 사기 등의 피해를 더 걱정한다. 하지만 유저들이 아이템 분실 등의 게임내 컨텐츠와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 업체에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제한적이다.

개인적으로 아이템에 대한 소유권은 콘텐츠를 개발한 개발사에만 있다고 생각하나?      

박: 글쎄, 아직까지 정확한 법적 기준이 없어 뭐라 단정 짓긴 힘들다. 현재까지의 판례로 볼 때 법은 게임 아이템은 게임 업체가 ‘지적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콘텐츠로 인정해주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재미있는 분석을 한 논문이 최근 발표됐다.

현직 판사인 윤웅기 판사가 게임 아이템의 소유권에 대한 법적 해석을 임차인과 임대인의 관계로 설명한 논문이다. 이 논문의 요지는 이렇다.

임차인(게임업체)은 임대인(유저)에게 일정비용(게임비용)을 받고 물건(아이템)을 대여한다. 그러면 임대인은 스스로 노력을 통해 물건의 가치를 올려 다른 이에게 보다 높은 권리금을 받고 이를 넘긴다. 임차인은 자신의 물건(게임)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므로 물론 이를 용인한다. 일반 상가임대의 권리금 개념과 같다. 상가 임대에서 이런 경우라면 임대인은 자신의 노력이 들어간 물건에 대해 권리금에 대한 차익을 인정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아이템’에 대한 권리를 유저들도 일부 주장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때문에 아이템 소유권에 대해서는 법적인 논란이 일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G: 온라인 게임이용시 개인정보가 유출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박: 일단 이용하고 있던 모든 인터넷 사이트의 개인정보를 변경해야 하고 증거를 남긴다. 그래야 구체적인 피해사실을 입증하고 보상 받을 수 있다. 이후로는 법 전문가에게 의뢰해 업체에게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면 된다. 소송은 소송착수금 3만원이면 가능하다(웃음).

G: 엔씨소프트가 최근 휴대폰 인증, 주민등록대체수단 등을 도입하는 등 개인정보보안에 대해 힘쓰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 긍정적인 현상이다. 자꾸 옆에서 시비를 거니 바뀌는 것 같다(웃음). 이 소송은 좀 공익적인 차원에서 진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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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게임은 유저의 적극적인 참여로 활성화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게임 개발사는 새로운 컨텐츠를 개발해낸다. 때문에 게임산업에서 유저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개발사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개발사와 유저 사이의 대화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주문과 강제로 막혀 버린다면 원활한 ‘혈액순환’은 기대 할 수 없다.

불행히도 현재 한국의 게임 개발사들은 아직까지 유저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다. 아니 듣지 않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수많은 개발사들이 유저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유저들이 체감하는 개발사와 유저 사이의 거리는 멀기만 하다.

정말 개발사들은 유저의 불신이 자신의 숨통을 조여오리란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박진식 변호사는?

법무법인 넥스트로의 박진식 변호사는 지난 4월 엔씨소프트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1차 승소하며 대 엔씨 변호사로 이름을 알렸다. 당시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명의 도용사태’로 언론의 뭇매를 맞고 있었던 상태여서 이 소송은 더욱 조명을 받았다. 박진식 변호사는 당시 소송이 엔씨가 그 전에 피소 당했던 사건보다 엔씨의 과실이 좀 더 명확했기 때문에 승소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엔씨소프트는 현재 서울 지방 법원의 판결에 항소해 2차 공판이 진행 중이다. 박진식 변호사 역시 추가 소송인을 모집해 2차 소송을 제기했다. 박진식 변호사는 엔씨소프트 소송으로 인해 국민은행 개인정보 유출 사건의 피해자들을 변호하는 등 개인정보 유출 소송 전문 변호인으로 활동하고 있다.